종소리가 울리는 길에서

이창재(제1남선교회)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네/하지만 나뭇가지 사이로 불어오면/
초록빛 바람이 된다네/그리고 꽃송이 위에서 숨결을 내쉬면/
꽃 바람이 된다네/지금 내 얼굴을 간지럽히는 이 바람은/
어떤 바람이 되려나/나는 가만히 생각해보네 <호시노 토미히로의 ‘종소리가 울리는 길에서’>

호시노 토미히로에게는 담담함이 있습니다. 그는 삶의 비애나 질곡을 노래하지 않습니다. 일상생활에서 느껴지는 가벼운 스케치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을 뿐입니다. 뺨을 스쳐가는 바람이 초록빛이 될까 아니면 꽃 향기를 낼까--. 거창하거나 심각한 주제는 아니지요. 그렇다고 경박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곱씹어가며 음미할 게 있습니다. 담담한 글 속에서 스며 나오는 넉넉한 속뜻- 그것이 토미히로 작품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토미히로는 목 아래를 전혀 움직이지 못합니다.  학교에서 기계체조 동아리 활동 중 뜻밖의 목 골절상을 입어 중증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그런 토미히로가 밝고 투명한 서정을 갖게 된 것은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자신에게 닥친 장애마저도 하나님의 의지 안에서 이뤄졌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토미히로는 이제 마음의 평안을 찾습니다. 붓을 입에 문 채 그림을 그리고 시를 씁니다. 입안에 피가  고이는 고통을 감내하면서 글자 하나를 찍어내고 그림 한 획을 긋습니다.
‘종소리가 울리는 길에서’ ‘한없이 아름다운 꽃들’ ‘당신의 손바닥’ 등의 저서와 시화집 ‘내 꿈은 언젠가 바람이 되어’ 등은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그의 자전적 수기(극한의 고통이 피워 낸 생명의 꽃)는 20여년 전 초판이 나온 이래 1백 50만권 이상이 팔려나간 ‘스테디 셀러’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토미히로의 얼굴을 간지럽히는 바람은 어떤 바람이 될까요? 그의 시 한 구절이 단서를 제공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들판을 지나는 바람이 뺨을 스치고, 내 상념은 언젠가 바람이 됩니다. 나는 꽃잎을 어루만지고 민들레 홀씨와 함께 하늘을 날아올라 옥수수 잎사귀를 사각이다가, 나뭇잎을 한 잎 한 잎 뒤적이며 초록빛 산을 오릅니다”
투명한 서정성으로 정제된 시에서는 자유분방함이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노랑나비가 나풀 나풀 날 듯 경쾌하고 매끄럽습니다. 장애라는 삶의 질곡을 털어버리려는 의식적인 몸짓도 발견되지 않습니다.    토미히로는 움직이지 않는 자신의 팔 다리를 보며 비탄만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같은 몸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배우면서 살아가자고 마음 먹었습니다.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라면 의연히 받아들이고 자신이 할 일을 찾겠다는 자세입니다. 그런 토미히로의 삶과 작품에서 우리 모두는 성찰의 시간을 갖게 됩니다.
 작은 고난에도 쉽게 좌절하고 비관으로 치닫는 게 저를 비롯한 많은 현대인들의 모습입니다.
지나친 걱정으로 스스로를 황폐화할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암울한 그림자를 안겨줍니다. 그런 현대인들을 스쳐간 바람에서는 칙칙한 냄새가 풍겨져 나옵니다. 그 바람이 절망의 바람이라면 토미히로의 바람은 희망의 바람입니다. 토미히로의 바람이 낙관의 바람이라면 그 반대는 비관의 바람입니다.
 꽃송이는 꽃 바람을 냅니다. 나뭇가지는 초록빛 바람을 생산합니다. 그렇다면 저는 어떤 바람을 만들고 있을까요. 향기로운 바람? 악취 나는 바람? 신바람? 결국 나는 누구이고 무엇을 생각하느냐에 달려 있는 문제라고 하겠지요. 성도님은 지금 어떤 바람을 만들고 계십니까?